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임수명

任壽命

1894. 2. 15 ~ 1924. 11. 2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임수명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서울의열투쟁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4년 2월 1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출신지로 알려진 충북 진천군(鎭川郡) 이월면(梨月面) 노원리(老院里)는 남편 신팔균(申八均)의 거주지이다. 서울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중, 1912년 일제 경찰에 쫓겨 환자로 위장한 신팔균을 만나 동지가 되었고 1914년 결혼하였다. 슬하에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두었다. 결혼 후 신팔균이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망명하자, 국내에 남아 독립운동 비밀문서 전달 및 연락, 배포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21년 아들 셋을 데리고 중국으로 가서 베이징에서 거주하였다. 1922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결성되었을 때 군사위원장인 남편과 함께 활동하였다. 1924년 7월 2일 이른바 ‘흥경사변(興京事變)’ 또는 ‘이도구사변(二道溝事變)’에서 남편 신팔균이 사망하였다. 당시 만삭의 몸으로 베이징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있다. 이에 참모들은 신팔균의 사망 소식을 알리지 않고 국내로 돌아가도록 주선하였다. 남편의 전사 사실을 모른 채 주변의 강권으로 1924년 8월 서울로 돌아온 뒤, 종로구 사직동에서 셋방 한 칸을 얻어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던 중 딸을 출산하였다. 생활이 어려워 종로구 필운동에 사는 일가 신현익(申鉉翼)에게 둘째 아들 신현택(申鉉宅)을 맡기고, 신현익의 도움으로 근근이 연명하였다. 그러던 중 남편의 전사 사실을 알게 되었고, 10월 31일에는 셋째 아들인 3살짜리 신현길(申鉉吉)마저 병으로 죽었다. 이에 크게 낙담하여 1924년 11월 2일 10시경 갓 낳은 딸 신계영(申季永)에게 양잿물을 먹이고, 자신도 양잿물을 마시고 세상을 하직하였다. 유해는 진천에 따로 살고 있었던 맏아들 신현충(申鉉忠, 신팔균의 사별한 전 부인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 진천 선산에 안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경목⋮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