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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學

鍾學

1869 ~ 1907.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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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鍾學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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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금산(錦山)의열투쟁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금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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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자신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을사오적 처단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충청남도 금산(錦山) 출신이다. 판결문에 1907년 당시 38세인 것으로 미루어, 1869년생으로 추정된다. 1905년 11월 17일 이른바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 체결되자, 나인영·오기호 등은 을사오적을 처단키로 작정하였다. 나인영 등은 1907년 2월 3일 비밀결사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고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2월 13일((음) 1월 1일) 문무백관이 진하(陳賀) 차 입궐하는 날을 이용하여 처단 의거를 결행기로 하였으나, 일본군의 경계 강화로 결사대원들이 서울로 집결하지 못하자, 거사일을 3월 25일로 연기하였다. 결사대원 30인이 선발되어 이기(李沂)가 작성한 「자신회취지서(自新會趣旨書)」와 나인영이 작성한 「애국가」·「동맹서」·「참간장(斬奸狀)」과 무기를 휴대하였다. 또한 윤주찬은 이광수와 함께 대한제국 정부에 올리는 글과 통감부와 군사령부 그리고 각국 영사관에 보내는 공문 및 내외국인들에게 알리는 포고문을 작성하였다. 이때 자신회에 가입하여 1907년 (음) 2월 초순 두 차례에 걸쳐 의거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같은 달 12일 을사오적들이 출근하는 길목을 나누어 매복하여 같은 시간에 처단키로 하고, 서문 밖 노상에서 서태운(徐泰運) 등 동지 8명과 총과 봉을 소지하고 대기하였으나 착수하지 못하였다. 의거에 실패한 후 동지 서태운과 통진(通津)으로 옮겨 거사 자금을 마련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경기도 수원에서 붙잡혔다. 1907년 7월 3일 평리원에서 교수형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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