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學奉
黃學奉1902 ~ 1929. 11. 2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참의부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3) 평안북도 초산군(楚山郡) 고면(古面) 문덕리(文德里)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902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로 이주한 이후 펑톈성(奉天省) 지안현(輯安縣)에서 거주하였다. 만주 지역에서 참의부(參議府)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 초 남만에서 김승학(金承學)·채찬(蔡燦)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참의부에 가입하여 유격대 참사(參士)로서 활동하였다. 참의부가 임시정부 직할의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로 개편된 뒤에는 제4중대에 편입되어 활동하였다. 참의부는 1924년 초에 성립된 재만 독립군단이다. 1922년 환런현(桓仁縣)에 통합독립군단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성립되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공화파와 복벽파 간에 불화가 생겼다. 그리하여 복벽주의 계통의 전덕원(全德元) 일파가 의군부(義軍府)를 조직하여 단체를 이탈하였다. 의군부는 이후 통의부와 잦은 마찰을 보였고, 이에 통의부 의용군 제1중대장 채찬(蔡燦)을 비롯한 김선풍(金旋風)·최지풍(崔志豊) 등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채찬 등은 전 독립군 세력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하나로 뭉쳐줄 구심점이 있어야 됨을 깨닫고, 1923년 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 만주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임시정부를 구심점으로 만주의 독립군단을 대동단결시켜야 한다는 합의점을 도출하였으며, 채찬 등은 통의부 의용군 제1·2·3중대와 유격대 및 독립소대를 따로 분리시켜 1924년 초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를 성립시켰다. 참의부 성립 초기의 간부진은 참의장 겸 제1중대장 채찬, 제2중대장 최석순(崔碩淳), 제3중대장 최지풍, 제4중대장 김창빈(金昌彬), 제5중대장 김창천(金蒼天), 독립소대장 허운기(許雲起), 훈련대장 박응백(朴應伯), 중앙의회 의장 백시관(白時觀), 민사부장 김소하(金篠厦)로 구성되었다. 지안현 화전자(花甸子)를 중심근거지로 하여 압록강 접경 지역인 콴뎬(寬甸)·환런(桓仁)·지안·퉁화(通化)·푸숭(撫松)·창바이(長白)·안투(安圖)·류허(柳河) 등을 관할 지역으로 하여 이 지역 내의 한인들을 기반으로 자치활동을 펴는 한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23년 1월 송익순(宋益淳) 등 1인과 함께 평북 위원군(渭原郡) 밀산면(密山面) 읍동(邑洞)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1924년 7월 15일에는 동지 김명수(金明洙) 등 1인과 초산군 고면(古面) 문덕리(文德里)에 들어가 군자금 모집 활동을 수행하였다. 같은 해 10월 17일 정낙수(鄭洛水) 등 4명과 함께 초산경찰서에서 각 주재소에 배급하는 총검이며 기타 물품을 마차에 싣고 초산군 남면(南面)과 경계지에 있는 동면(東面) 다락령(多樂嶺)을 지나갈 때 일제 경찰 정탐 김찬득(金贊得)을 사살하고, 경찰 피복 및 도검류 80여 점과 권총 2정을 노획하였다. 활발하게 항일활동을 전개하던 중 붙잡혔다. 1929년 8월 1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살인죄, 방화죄 등으로 사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2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그해 11월 27일 평양형무소에서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박성순⋮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