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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수

田學秀

1896 ~ 1929.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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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전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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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자성(慈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자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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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독립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95) 평안북도 자성군(慈城郡) 장토면(長土面) 벌동(伐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96년생으로 추정된다. 1920년 아버지와 함께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이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담하여 통신원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4월 대한통의부 제1중대 제1소대장 강병선(康炳善)을 만나 항일운동에 참가하였다. 1924년 1월까지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훈련을 받았다. 대한통의부는 남만주(南滿洲)에서 활동하던 여러 독립운동단체가 통합하여 조직된 단체였다. 1924년 1월 19일 남만주 지안현(輯安縣) 상화보(尙和堡) 노상동(老祥洞)에서 서용운(徐龍雲) 등 동지 4명과 함께 밀정 홍국준(洪國俊)을 처단하였다. 같은 달 20일 지안현 양민전자(良民甸子)에서 밀정 유봉수(劉鳳水)를 처단하였다. 1924년 1월 통의부 제1중대장 백광운(白狂雲)의 지시로 2월 20일 이화주(李華周)의 인솔 아래 안정길(安貞吉)·양봉제(梁鳳濟) 등 총 4명과 함께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한반도로 이동하였다. 평북 강계군(江界郡) 문옥면(文玉面)에서 문흥경찰서(文興警察署) 문악출장소(文岳出張所) 일제 경찰 67명과 교전하여 1명을 사살하였다. 4월 25일 지안현에서 밀정 홍석찬(洪石贊)을 처단하였다. 밀정 김원조(金元祚)를 처단하려 했으나 도주하여 실패하였다. 이후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가 1928년 10월 강계군에서 신의주경찰서(新義州警察署)에 붙잡혔다. 1928년 11월 7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불법체포죄, 살인죄, 강도죄로 사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9년 4월 1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6월 27일 최종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1929년 7월 27일 오후 12시 30분 평양형무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최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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