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준
任度準1879 ~ 미상
관련 단체
- · 대한군정서
- · 북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청산리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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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자료에 따르면 1922년 당시 44세로 1879년생으로 추정된다. 출신지 및 성장 과정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호는 백아(白我)이고 이명은 한자가 다른 임도준(任都俊)이다. 대한제국 육군조장(陸軍曹長)을 역임하였다. 1909년 함경북도 내무부(內務部) 군주사(郡主事)로, 1910년 회령군(會寧郡) 서기로 근무하였다. 1917년부터 조선총독부 함경북도지방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으로 근무하였다. 1919년 당시 군참사(郡參事)로 근무하면서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에 거주하였으며 대종교(大倧敎) 신자였다. 1919년 3월 13일에 일어난 온성과 경성(鏡城)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20년 7월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제3대 대장을 역임하였다.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김좌진(金佐鎭)의 막료였던 이정(李楨)의 진중일기에는 서무부 부장을 맡은 것으로 나타난다. 북로군정서는 1920년 10월 청산리대첩의 주력부대로 역할을 하였다. 1922년에는 대한혁명단(大韓革命團)에서 설립한 무관학교의 교장을 맡았다. 1920년대 중반 이후 흑하(黑河) 지역의 고려공산당 지부장을 역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곽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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