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진
丁德鎭1897. 1. 9 ~ 1977. 4. 2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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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7년 1월 9일 경상북도 달성군(達城郡) 달서면(達西面) 성당동(聖堂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이명은 정팔진(丁八鎭)이다. 기독교 신자이다. 1920년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파원 이현수(李賢壽)와 함께 독립 공채 모집 및 워싱턴 회의 독립 청원 사건에 참여하였다. 1920년 8월 임시정부 교통국 차장 김철(金澈)·재무총장 이시영(李始榮)·차장 윤현진(尹顯振)·군무국장 도인권(都寅權)으로부터 국내에 들어가 인쇄물 배포를 통한 인심 동요, 독립 공채 모집, 국내 연락 기관 설치 등을 지시받았다. 같은 달 미국 의원단 내한에 즈음하여 이현수와 함께 달성·경주(慶州)·성주 3개 군 공채 모집 위원(公債募集委員)과 경북 교통 사무 특파원(慶北交通事務特派員)의 신분으로 국내에 잠입하였다. 이때 암호문(暗號文)과 주비단 단제(籌備團團制)를 비롯한 경고문(警告文)·『자유신보(自由申報)』·물품불구매고지서(物品不購買告知書)·납세거부서(納稅拒否書)·독립공채모집인정서(獨立公債募集認定書) 등 다수의 독립운동 관련 문서를 휴대하고 들어왔다. 그리고 달성군 화원면의 서장환(徐章煥) 등과 함께 이 문서를 인쇄하였다. 1920년 2〜3월경 이현수·서장환·곽종해 등과 함께 대구(大邱)·안동(安東)·영천(永川)·경주 등 경북 일원의 친일 군수와 면장, 기타 관공리(官公吏) 및 부호 유지들에게 경고문·물품불구매고지서·납세 거절 협박문 등을 발송하였다. 한편, 이를 대구부(大邱府) 내의 노상에 살포하여 반일 애국정신 고취와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12월 미국 워싱턴 회의에 외국인 선교사를 통하여 「독립청원서(獨立請願書)」를 발송하였다. 그리고 특파원 이현수가 집필한 영문 잡지 『자유(自由)』를 대구·평양(平壤)·대전(大田) 등 전국 각처에 있는 외국인 선교사,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사 지국 등에 비밀리 배부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1월 9일 일제 관헌이 그의 활동을 탐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현수가 자수하면서, 이때 관련자 42명과 함께 붙잡혔다. 붙잡힌 후 자택에서 경고문·물품불구매고지서·납세 거절 협박문 등 다수의 독립운동 관련 문서가 압수되었다. 1923년 1월 29일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출판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대구지방법원에서 심리를 받았으나, 기소유예 불기소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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