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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국

鄭南局

1897. 2. 27 ~ 1955.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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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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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莞島)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완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배달청년회
  • · 재일조선노동총동맹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7년 2월 27일 전라남도 완도(莞島)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5일 완도 일대에서 송내호(宋乃浩)·최형천(崔亨天)·신준희(申俊熙)·김경천(金景天)·강정태(姜正泰) 등 예수교 및 천도교 계열의 인사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전남노동연맹 상임위원으로 활동하였고 송내호의 권유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군자금 모금원이 되었다. 지원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엿장수로 위장하고 전남 일대를 다니며 연락책으로 활동하였다. 모금한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이동 중 검문을 받아 붙잡혔고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4년 9월 13일 완도군 소안면(所安面)에서 노농연합대성회(勞農聯合大成會)를 개최하는데 관여하여 행사장에 입회하려는 일제 경찰을 퇴장시키고 악질지주를 비판하는 등 항일 운동에 앞장섰다. 하지만 일제 경찰에 붙잡혀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1925년 5월 2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6년 6월 완도군에 배달청년회(倍達靑年會)가 결성될 시 부회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그해 7월 일제가 소안면 주민들이 설립한 사립소안학교를 강제로 폐교시켜 공립학교로 개편하려고 하자 공립학교 개편에 반대하는 면민대회를 개최하고 사회를 맡았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大阪)에서 1927년 5월 10일 완도향우회(莞島鄕友會)·동경향우회(東京鄕友會)와 힘을 합쳐 재일본노동총동맹(在日本勞動總同盟)을 조직하고 집행위원장이 되었다. 여기에서 사립소안학교를 강제 폐쇄하는 일제의 지배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실정반대실행위원회를 조직하고 규탄대회를 개최하였다. 그해 6월 재일조선노동총동맹위원장으로 추대받고 오사카 항구에서 4개 단체 회원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합동대회를 열어 축사를 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해 8월 7일 소안학교강제폐교에 반대하여 완도향우회에서 복교동맹을 설립할 때 대표로 도쿄(東京)에 파견되어 일제 내각 문부대신과 학무국에 항의서한을 전달하였다. 이후 제4차 조선공산당에 연루되어 1929년 7월 붙잡혔고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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