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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성

張台成

1909. 6. 19 ~ 1987.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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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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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옥구(沃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옥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옥구농민조합 서수지회
  • · 군산철도노동회
  • · 신간회 군산지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8) 1909년 6월 19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옥구면(沃溝面) 옥정리(玉井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장공욱(張公郁)·장수봉(張壽奉)이다. 활동 당시 옥구군 서수면(瑞穗面) 서수리(瑞穗里)에 거주하였고, 1927년부터 옥구농민조합 서수지회 등에서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10월 2일 박상호(朴相浩)·김영준(金寧俊)·신문관(申文官)·정영운(鄭永云)·최은엽(崔銀燁) 등과 함께 옥구농민조합 서수지회를 조직하고,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해 11월 20일 서수리에 위치한 주식회사 이엽사(二葉社)의 서수농장(瑞穗農場)에서 소작인이 부당한 대우를 받자 농민조합 간부들과 함께 농장 지배인에게 항의하였다. 같은 해 11월 24일 이엽사 농장의 만행을 고발하고 소작료 납부 거부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1월 25일 군산경찰소로 압송되기 전에 농민조합 동료들의 도움으로 피신 하였지만, 11월 27일 재차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28년 2월 29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이른바 협박죄 등으로 징역 6월(미결구류일수 중 5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1929년 5월 28일 군산형무소에서 풀려났다. 1929년 9월에는 군산철도노동회(群山鐵道勞動會) 간부로 활동하다가 동료 이인섭(李仁燮)·오재명(吳在明) 등과 함께 붙잡혔고, 29일 동안 구류 처분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1930년 7월 16일 일제 경찰의 군산철도노동회·군산노동회(群山勞動會)·군산하차노동조합(群山荷車勞動組合) 탄압으로 동료 박판남(朴判男)·이원삼(李元三)·황기현(黃基玄)·김응배(金應培) 등 3개 단체 주요간부 40여 명과 함께 붙잡혔다. 그리고 전북경찰서 일제 경찰에게 공산주의 사회 실현을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하였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고, 전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취조를 받았다. 같은 해 9월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예심에 회부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해 9월에는 신간회(新幹會) 군산지회 대표회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32년 2월 전영진(全榮津)·김응배 등과 함께 일제의 대륙침략에 반대하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 재차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광복 이후 1945년 11월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에 전북 군산대표로 참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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