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삼조
張三兆1914. 1. 16 ~ 1954. 11.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대구 군용열차전복미수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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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7) 1914년 1월 16일 경상북도 김천군(金泉郡) 아포면(牙浦面) 제석동(帝錫洞)에서 아버지 장계술(張季術)과 어머니 박춘발(朴春發)의 3남으로 태어났다. 이름의 한자 표기가 '張三祚'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부친의 농기구상 일을 도왔다. 1931년 12월 2일 밤 10시경, 동네 선배 김복만(金福萬)·김일조(金壹兆)·박갑천(朴甲天) 3인과 함께 제석동과 이웃마을 국사동(國士洞) 중간의 경부선 철로에서 김천역과 구미역(龜尾驛) 사이의 전화선을 절단하고, 철로 곁의 토관표목(土管標木) 2개, 무단통행 경고판 1개, 곡선표석(曲線標石) 1개 및 각각의 받침대를 뽑아다 선로 위에 걸쳐놓거나 세워놓았다. 이는 같은 해 9월의 만주사변(滿洲事變) 발발 이후 부산발(釜山發) 만주행 군용열차의 경부선 통행이 빈번해졌음에 불만을 품고 통행방해와 기차전복을 의도하고서 벌인 항일행동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이튿날 오전 철도순시원에게 발각되어 일제 경찰의 수사가 개시되었다. 다른 3인은 며칠 만에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지만, 홀로 몸을 피하였다. 1931년 겨울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건너가 점원으로 일하다가 2년여 만에 신원이 드러나 붙잡혔고, 압송되어 ‘기차전복미수죄’로 기소되었다. 1935년 5월 2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김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형기 만료 석 달 전인 1936년 8월 11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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