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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成濬

成濬

1892. 10. 2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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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成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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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봉산(鳳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봉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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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용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6) 1892년 10월 26일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초와면(楚臥面) 은파리(銀波里)에서 태어났다. 1920년 임시군사주비단(臨時軍事籌備團) 휘하 한용단(韓勇團)이라는 별동단을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임시군사주비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20년을 ‘독립전쟁의 원년’으로 확정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구축한 군사조직체로, 특히 국내 독립전쟁을 위해서 국내에 그 조직을 두었다. 서울과 황해도 두 지역에 조직을 만들었는데 그 조직체계는 사령부(司令部) - 연단(聯團) – 소단(小團) - 분단(分團)으로 하달되는 형태였다. 최소 단위인 분단은 10명으로 구성되고, 10개의 분단이 모여 소단이, 10개의 소단이 모여 연단이 되었다. 1920년 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방선전부 예하 황해도 재령(載寧) 선전대원인 이승길(李承吉)의 주도로 황해도 임시군사주비단이 만들어졌다. 이후 400여 명의 단원을 규합하여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임시군사주비단의 임무는 ‘독립운동 방해자 조사 및 처치’와 같은 의열투쟁, 군사조직 구축과 군자금을 모으는 활동이었다. 임시군사주비단 단원들은 군자금 모으는 활동에 더 집중하기 위해 하위 조직으로 한용단을 조직하였다. 1920년 12월 봉산군 초와면에서 오병섭(吳秉爕)·김호익(金浩益)·김기형(金基瀅)·김정일(金鼎一) 등과 함께 한용단을 조직하였고 김정일을 단장으로 추대하였다. 이들은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100원 상당의 공채를 매각하는 방법에 대해 의논하며 군자금을 모으는 일에 나섰다. 1921년 1월 13일 은파리 자택에서 이승윤(李承潤)·임호준(林昊濬)·김호익·김기형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 방법에 대한 논의를 거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군자금 모금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1921년 4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그해 5월 19일 해주지방법원 서흥지청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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