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선
李芝善1893. 9. 2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1893년 9월 28일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북면(北面) 명문리(明文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정선(李正善)이다. 1923년 9월 천마산대(天摩山隊)의 후계 조직인 독립청년단(獨立靑年團)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천마대 혹은 천마산대는 1920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최시흥(崔時興), 최지풍(崔志豊), 박응백(朴應伯), 최천주(崔天柱), 심용준(沈龍俊), 김세진(金世鎭), 양봉제(梁鳳濟)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항일 무장단체로 근거지가 의주군 고령삭면에 있는 천마산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천마별영(天摩別營), 철마별영(鐵馬別營)으로 불리기도 했다. 500여 명의 대원들로 구성되었는데 중심 인물은 대한제국 군인 출신이 많았고 화승총 등의 재래식 병기로 무장하였다. 근거지였던 의주를 비롯하여 구성(龜城)·삭주(朔州)·창성(昌城) 등 평안북도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친일파 및 일본관리 처단 등과 같은 무력 투쟁, 군자금 모집, 민중 공작 등을 중심 목적으로 두었다. 단체 설립 후 약 2년간 국내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펼쳤으나 일제의 ‘토벌’이 점차 심해지자 1921년 남만주로 근거지를 옮겨 국내 침투 활동을 펼쳤다. 한편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가 결성되자 합류하여 의용군 제3중대로 편제되었다. 그러던 중 1922년 대장이었던 최시흥이 중국 관헌에게 붙잡히자 조직은 자연스럽게 대한통군부로 흡수되었다. 이 과정에서 1922년 여름 천마산대 출신이었던 최오산(崔午山)·조준용(趙俊龍) 등은 희천에서 독립청년단을 조직하여 무장 투쟁을 시작하였다. 1923년 9월 21일 17명의 독립청년단원들과 함께 희천군 북면 명문동 창첨(倉站)의 경찰관 파출소와 면사무소 등을 공격하고 일본인 순사를 사살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으나 병력의 열세로 붙잡혔다. 이후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방화죄와 살인죄로 징역 5년을 받았고 이에 항소하였으나 기각되고 신의주형무소에 수감되어 옥고를 겪었다. 한편 공판 과정에서 체포 이후 일제 경찰에 의해 심한 고문을 당한 사실이 알려져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1927년 11월 15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석호⋮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