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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曾參

曾

1913. 3. 27 ~ 200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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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曾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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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固城)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고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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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도서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3) 1913년 3월 27일 경상남도 고성군(固城君) 고성읍(固城邑) 덕선리(德仙里)에서 태어났다. 진주고등보통학교(晋州高等普通學校) 2학년이던 1930년 1월 17일 진주고보 항일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학년 주도자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으며 학교로부터 정학 처분을 당하였다. 당시 광주에서 학생항일운동의 소식이 전해지자 진주고보의 학생들은 4학년과 3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여러 차례의 모임을 통해 1930년 1월 16일 정인수(鄭仁壽)의 집에 모여 구체적인 항일 시위 계획을 논의하였는데 그 내용은 “① 거사일은 1930년 1월 17일로 하고 시간은 오전 9시 조회 직후로 한다 ② 일제에 대한 성토 내용은 광주학생항일운동으로 구금된 학생들의 조기석방, 노예교육 철폐, 경찰의 학원개입 중지 등으로 한다 ③ 조방제(趙邦濟)가 조례대에서 선언문을 선언하기로 한다 ④ 당일 거사의 성공을 위해 독려반과 선동반을 편성한다” 등이었다. 1930년 1월 17일 아침 조례시간에 교장이 훈시를 마치고 하단하자 약속한 대로 조방제가 등단하여 미리 준비된 선언문을 선창하고 격문을 살포하자 학생들은 모두 구호를 외치며 호응하였다. 학생들은 교문을 넘어 시내로 행진하였고 지역 내 각 학교를 돌며 학생들의 동참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이미 출동한 일제 경찰의 제지와 각 학교 교사들의 대비 등으로 소규모 학생들의 산발적인 참여 외의 성과는 크게 거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격문을 뿌리며 시내에서 시위를 진행했고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의해 ‘학생검거령’이 내리고 주도 학생 6명은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붙잡혀서 구속되었으며 2학년 주도자로 인정되어 학교로부터 정학 처분을 받았다. 정학이 끝나고 복교한 후에도 일제에 대한 항일의식을 꾸준히 키워갔는데 이는 독서회라는 이름의 비밀조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진주고보 5학년이던 1933년 일본어 상용령에 반대하며 독서회 회원들이었던 한계수(韓桂壽)·장준(張駿)·황진생(黃鎭生)·김사옥(金駟玉) 등과 함께 항일동맹투쟁을 계획하고 준비하던 중 11월 27일 다시 붙잡혔다. 이 일로 인해 1934년 8월 3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홍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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