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重珏
重珏1895. 12. 23 ~ 1923. 3. 2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청년구락부
- · 조선노동대회
- · 자유노동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5년 12월 23일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남이면(南二面) 가마리(駕馬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일해(李一海)이다. 유년시절이나 학업 관련 사항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으나, 1918년 방정환(方定煥), 유광렬(柳光烈), 이복원(李復遠) 등과 함께 경성청년구락부(京城靑年俱樂部)를 조직하는 등 1910년대 후반 청년문화운동의 주력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한편 청년구락부의 기관지였던 『신청년』의 창간사를 한용운(韓龍雲)으로부터 받아와 게재하도록 하는 등 해당 잡지의 편찬과 간행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1919년 11월에 창간한 잡지 『녹성(綠星)』의 편집 및 발행자로도 활동했다. 『녹성』은 예술잡지를 표방하였고 그 내용은 주로 영화(활동사진) 잡지였다. 『녹성』은 일본에서 발간, 인쇄되어 서울에서 판매, 유통되었는데 당시 도쿄(東京)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1920년 2월 16일에는 김광제(金光濟), 문탁(文鐸), 권직상(權直相), 노병희(魯秉熙), 정규환(鄭圭換) 등이 발기한 조선노동대회(朝鮮勞動大會)에 참여했다. 그 해 5월 2일에 창립한 조선노동대회는 노동자들의 상호 부조와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된 노동운동 단체였다. 이후 1920년 3월 17일에는 잡지 『신조선(新朝鮮)』의 기자 신분으로 이달(李達)·김만수(金萬洙) 등의 인물들과 함께 3·1운동 1주년 기념 시위를 계획하고 도쿄에서 시위운동을 결행하며 일본의 제국의회에 독립청원서(獨立請願書)를 제출하는 계획을 세웠다.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여러 준비를 하던 중 다른 주도 인물들과 함께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 이로 인해 조사를 받았으나 면소(免訴)되었다. 같은 해 7월 31일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조선민단(朝鮮民團)의 강연회가 개최되었다. 조선민단은 1920년 결성된 노동운동 단체인 조선노동대회(朝鮮勞動大會)의 별동조직으로 노동대회의 간사였던 김영만(金榮萬)이 주도한 조직이었다. 그 강연회의 연사로 초빙되었으나 고사하고 대신 박무병(朴武炳)·임종연(林鍾淵)을 연사로 섭외하였다. 이 강연회의 내용이 한국의 독립 사상을 고무한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해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2년 조선노동대회의 내부 인적 쇄신을 통해 사회주의 운동을 주도하던 서울청년회 계열의 인물들이 노동대회를 장악하게 되었는데 이들과 노선을 함께 하였다. 조선노동대회는 1922년 10월 자유노동조합 발기총회를 개최하고 경성자유노동조합(京城自由勞動組合)을 결성하였다. 이때 집행위원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1923년 초 의열단 관련으로 붙잡혀 고문을 받았다. 이때의 고문으로 정신 이상이 되었고, 1923년 3월 26일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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