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棕欽
棕欽1900. 2. 20 ~ 1976. 3.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제2차 유림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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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0년 2월 20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도산면(陶山面) 토계동(土溪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반산(泮汕)이다. 1925년 김창숙(金昌淑)의 주도로 해외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제2차 유림단 사건에 가담하여 자금 모집과 자금 전달 등의 역할을 맡았다. 파리장서(巴里長書) 운동의 지도자로서 중국에 머물고 있던 김창숙은 1925년 3월 유학을 목적으로 중국에 체류하던 송영호(宋永祜)·김화식(金華植) 등과 베이징(北京)에서 만나 독립운동에 힘을 모으기로 협의하였다. 김창숙의 친척과 옛 친구로부터 자금 약 20만 원을 모집하여 만주와 몽골 지방에서 토지를 매입하고, 남·북만주에 흩어져 사는 한인 농민을 모으고, 이몽견(李夢見)·서겸(徐兼) 등에게 의뢰하여 보호를 받고, 농업을 경영하여 장래 생활의 여유를 얻은 후에 학교를 세워 군사를 길러 외국으로도 학생을 보내고, 더욱 실력이 충실해지면 군대도 양성하여 독립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송영호와 김화식을 먼저 국내에 입국하게 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게 하여 다른 유림들과도 연대하려고 하였다. 1925년 11월 17일 김창숙의 지시를 받고 입국한 송영호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는 취지를 듣고 모험단원(冒險團員)이 되었다. 안동 지역의 연락 책임자였던 정수기(鄭守基)로부터 김창숙의 비밀 입국 사정을 듣고 1925년 말경 대구(大邱)에서 김창숙과 접촉하여 권총 한 자루를 전해 받았다. 이 자리에서 경북 영양군(英陽郡) 석보면(石保面) 원리동(院里洞)에 거주하는 부호인 외숙부 이헌병(李憲炳)으로 하여금 군자금 1만 원을 모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1926년 1월 15일 숙부 이헌병을 방문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람이 군자금 모집을 하러 왔다는 취지를 설명하고 자금을 출금할 것을 설득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1926년 2, 3월경에 재차 이헌병에 집에 가서 다시 한 번 독립운동 자금을 요구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정수기로부터 군자금으로 1,000원을 받아 송영호에게 전달하였다. 그러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이어가던 중 송영호·김화식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27년 1월 21일 예심을 거쳐, 같은 해 3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치안유지법 위반, 강도죄 등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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