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在基
鄭在基1890. 1. 14 ~ 1974. 11. 2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일신단(一身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1919년 하동군 고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90년 1월 14일 경상남도 하동군(河東君) 고전면(古田面) 성천리(城川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고전면 만세시위 계획을 주도하다가 사전에 붙잡혔다. 1919년 3월 1일 서울·평양·안주·의주·선천·원산·진남포에서 만세운동이 일제히 발발하였다. 3월 1일 만세시위를 주도한 종교계와 학생들은 만세시위의 전국적 확산을 추진하였다. 이에 인편을 이용해서 전국 각 지역에 만세시위 계획 및 발발 소식을 알림과 동시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경상도와 전라도 경계에 위치한 하동군은 교통의 요충지로서, 각 지역에서 발발하는 만세시위 소식을 시시각각 전달받을 수 있었다.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城川里) 지소(紙所) 부락(部落)에 사는 박영묵(朴永黙)은 평소 독립을 바라고 있었는데,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동지들을 규합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박영묵의 결의에 동의한 이종인(李宗仁)·정상정(鄭相正)·정의용(鄭宜鎔)·정윤용(鄭潤鎔) 등 33명과 함께 일신단(一身團)을 조직하였다. 일신단원의 일원으로 하동면으로 파견되었다. 파견 목적은 독립선언서를 입수하는 것이었다. 3월 27일 하동면으로 파견가기 전에 권우건(權又乾) 등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하도록 권유하였으며, 집에서는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3월 28일 하동면 장날이 열리는 장터로 가서 장터에 모인 사람들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하도록 연설하는 한편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 군경에게 붙잡혔다. 일제 군경의 조사 과정에서 일신단의 존재와 일신단 내 역할을 알리지 않았다. 그 덕택에 일신단원들은 고전면(古田面) 주교리(舟橋里) 장날이 열린 4월 6일 오후 1시 40분경에 만세시위를 시작할 수 있었다. 1919년 5월 5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무죄를 받았다. 이에 대한 검사의 항소로, 그해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고 1919년 12월 2일 풀려났다. 1938년에 흉년이 들자 본인의 곡식 창고를 열어서 기근으로 고통 받던 주민들을 구휼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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