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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소

丁炳沼

1898. 8. 2 ~ 1948.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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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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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光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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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8년 8월 2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대촌면(大村面) 대지리(大支里)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전라남도 광주군 본촌면(本村面)이며, 1919년 당시 광주농업학교에 재학하였다. 광주군 만세운동은 일본에서 유학하던 정광호(鄭光好)가 2·8독립선언의 내용을 가지고 귀국하여 만세운동을 계획하던 중,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귀향한 김범수(金範洙)·김철(金鐵)·김복현(金福鉉) 등과 만나 계획되었다. 이때 숭일학교 교사 최병준(崔丙浚)·수피아여학교 교사 박애순(朴愛順) 등이 합류하여 학생들에게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광주농업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3월 초 만세운동의 소식을 접하고, 광주농업학교에서 뜻있는 친구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준비하던 중, 3월 8일경 숭일학교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3월 9일 송기호(宋璂浩)·김정수(金丁洙)·황오봉(黃五峰)과 함께 숭일학교에서 만세운동을 함께 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 때 숭일학교 학생 김철주(金鐵柱)가 3월 10일에 거사를 할 것이지만 아직 시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자, 시간이 정해지는 대로 알려주면 함께 행동을 하겠다고 협의하고 광주농업학교로 돌아왔다. 이후 기숙사 6호실에 자리한 15~16명의 학생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다음날 시간이 전달되는 대로 활동을 함께 할 것을 결의하였다. 3월 10일 오전 광주농업학교 학생 최영균(崔暎均)이 만세운동을 계획한 서정희(徐廷禧)에게서 오후 3시 30분경 만세운동이 시작될 것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등교하였다. 당일 오후 3시 무렵 뜻을 함께하는 학우들과 함께 삼삼오오 짝을 지어 교사의 눈을 피해 학교를 탈출하였다. 누문리(樓門里)에 도착하자 이미 1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이들과 합류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며 시가를 행진하였다. 일행은 북문 밖 자동차사무소 앞에서 시내 쪽에서 출발한 1,000여 명의 군중과 합류하였다. 이어 우체국을 향해 행진하였는데, 이 무렵 일제 기마 헌병대와 소방대, 재향군인회 소속 퇴역 군인들이 몰려와 폭력적으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100여 명이 체포되었는데, 이 때 일제 헌병에 붙잡혀 심문을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1919년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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