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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용

鄭文鎔

1879. 11. 29 ~ 1919.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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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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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山淸)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산청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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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산청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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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79년 11월 29일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신안면(新安面) 하정리(下丁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정문수(鄭文秀)이다. 1919년 산청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8일 밤 김영숙(金永淑)·정태륜(鄭泰侖)·김상호(金相浩)·권숙린(權肅麟)·김선림(金善林)·김상문(金相文) 등이 부착한 독립선언문과 「격문」, 태극기를 보고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결심하였다. 3월 20일 오후 2시 단계리 시장으로 가서 만세시위에 합류하였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장 일대를 행진하였다. 만세시위를 주도한 김영숙과 정태륜 등은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장터에 모인 600~700여 명의 군중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 주도자들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3월 21일 오후 1시 무렵 단성면 성내리 시장에서 만세시위가 재개되었다. 이날 만세시위에 1,000여 명의 군중이 시장에 모였으며, 시위대의 일원으로 합류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라고 적혀있는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하였다. 일제 군경이 단성공립보통학교 앞 삼거리에서 시위대의 행진을 저지하고자 하였으나, 시위대와 함께 일제 헌병이 소지한 무기를 탈취한 후 헌병주재소로 몰려갔다. 헌병주재소에 도착한 후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돌과 곤봉을 들고 연행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시위대가 연행자의 석방을 요구하자, 일제 헌병은 시위대를 향해서 일제히 사격하였으며, 그 발포로 현장에서 정문수(鄭文秀)·주쇠이(朱釗伊)·정용수(鄭龍壽)·박권세 (朴權世)·허신(許伸)과 함께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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