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섭
鄭武燮1886. 2. 14 ~ 1960. 1.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미원면 장터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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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6년 2월 14일 충청북도 청원군(淸原郡) 미원면(米院面) 용곡리(龍谷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30일 미원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30일 만세시위는 신경구(申敬求)·이용실(李容實)·이수란(李水蘭) 등이 주도하였다. 당일 오전 신경구 등은 미원장터 인근에 소재한 김태복(金泰復)의 자택에서 만나 만세운동의 결의를 다지고, 신봉휴(申鳳休)가 만든 태극기를 이용실의 담뱃대에 매달아 흔들며 오후 2시경부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미원장터 사거리에서 주민들에게 한국 독립의 취지를 강한 어조로 연설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날 장날을 맞아 장터에 나왔다가 신경구 등의 연설에 크게 공감하고 이들의 호소에 호응하여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만세시위에 참여한 1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장터 곳곳을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 헌병대가 만세시위를 가로막고 해산을 명하였으나, 시위대는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 헌병대의 위협 앞에서도 결연한 자세로 만세시위를 전개하는 모습을 보고 더욱 많은 주민들이 호응하여 만세시위에 합류하였다. 일제 헌병대가 신경구를 체포하자, 시위대와 함께 헌병주재소로 이동하여 격렬하게 항의하였다. 만세시위가 격렬해지자, 일제는 청주(淸州)에서 지원 병력을 미원면으로 급파하였다. 청주의 일제 헌병들은 미원면에 도착하자마자, 미원면 일제 헌병들과 함께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의 선두에서 저항하다가 일제 헌병대의 총에 맞아 왼쪽 팔을 잃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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