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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석

鄭夢錫

1896. 4. 16 ~ 1961.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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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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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河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하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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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3) 1896년 4월 16일 경상남도 하동군(河東郡) 금양면(金陽面) 대치리(大峙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1일 강달영(姜達永)·박진환(朴進煥)·심두섭(沈斗燮)·이강우(李康雨)·권채근(權采根)·강상호(姜相鎬) 등과 함께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온 김재화(金在華)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하동군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만세시위 준비 모임에서 독립선언서와 교유문(敎喩文)을 작성하여 인쇄하고, ‘독립만세’라고 쓴 깃발과 태극기를 제작하였으며, 거사 당일 박지환 등과 함께 진주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기로 하였다. 3월 18일 박진환 등과 함께 군중에게 배포할 독립선언서와 교유문을 소지하고 시장으로 갔다. 오후 1시경부터 준비한 ‘독립만세’ 깃발을 세우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먼저 장터에 모인 군중을 향해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연설을 한 후 독립선언서와 교유문을 배포하였고,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선창하였다. 시장에 있던 군중이 호응하며 따라서 만세를 불렀다. 이후 시위대의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며 시장을 행진하였고, 읍내 중심가로 나아갔다. 진주시장을 중심으로 분산되어 시작된 만세시위가 계획대로 읍내 중심가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로 합쳐지면서 시위대 규모는 급격하게 확대되어 수천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이후 시위 현장에서 일제 군경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2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즉각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그해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우리 조선 민족도 자결의 시기가 왔음을 알리고 기쁜 마음으로 우리 조선 동포에게도 알리고 함께 즐기려고 의사를 표현한 것인데, 이를 범죄로 취급하여 징역 1년에 처한 것은 심히 부당하다”라고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9월 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에도 독립군 군자금 모금 등의 운동을 전개하다가 재차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8월 2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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