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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직

鄭邦直

1891. 8. 12 ~ 1961.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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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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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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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합천 삼가읍(3.18)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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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1년 8월 12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상백면(上栢面) 상지리(上池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정인표(鄭演彪)이다. 백산면(栢山面)의 이계엽(李啓燁), 가회면(佳會面) 윤재현(尹在鉉)과 함께 합천군 삼가읍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서울에 유학하고 있던 매부 이언영(李愿永)에게서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만세시위를 준비하던 중, 백산면과 가회면도 역시 비슷한 경로로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만세시위를 은밀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백산면의 이계엽, 가회면 윤재현과 긴밀히 연락하여 3개면이 함께 거사를 준비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각 면내의 유지들을 모아 후원을 받고, 시위의 선두에 설 큰 태극기와 시위 군중에게 나누어 줄 손에 드는 작은 태극기 등을 제작하였다. 거사일은 3월 18일 삼가장날로 하였다. 3개 면 사람들은 삼가시장으로 가는 길목의 정해진 장소에 모인다는 계획을 정하였다. 3월 18일 오후 1시부터 만세시위가 개시되었다. 시위 시작 직전에 이계엽·윤재현·공민호(孔敏鎬)·정각규(鄭恪圭) 등과 삼가시장 내 주점인 박흥대(朴興大)의 집에서 최종 회합을 가지고 거사를 점검하였다. 만세시위는 삼가시장 전면의 중앙 언덕위에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정각규·공민호 등과 함께 선두에 서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모인 군중은 300~400명 정도였다. 시위 행렬은 각 면마다 마련한 큰 태극기를 앞세우고 삼가시장을 누비면서 시위를 전개하였으며, 경찰관 주재소를 포위하기도 하였다. 당일 오후 5시 무렵부터 군중이 더 모여서 만세시위 양상은 보다 본격화되었다. 일제 경찰과 재향군인들의 폭력적 진압으로 공민호·정각규·한필동(韓弼東) 등 9명과 함께 시위 현장에서 붙잡혔다. 심문 과정에서 “일본이 우리에게서 역사적으로 많은 것들을 배워갔음에도 불구하고 침탈을 일삼은 배은망덕함”을 꾸짖고 더 이상 심문에 응하지 않는 결의를 보였다. 1919년 4월 23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13일 징역 1년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2일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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