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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직

鄭東稷

1878. 7. 6 ~ 1943.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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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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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홍성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78년 7월 6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화양리(華陽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금마면의 만세운동은 부평리(富平里)의 서당 훈장 민영갑(閔泳甲)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었다. 민영갑은 1919년 3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평소 시국에 대한 생각이 비슷했던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협의하여 금마면의 만세운동을 결의하였다. 이재만 등은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4월 1일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극공연이 예정된 것을 만세운동의 좋은 기회로 보고, 이날을 거사일로 계획하였다. 4월 1일 오후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은 연극공연에 관객으로 입장하여 아직 공연이 끝나지 않은 오후 8시경 일제히 객석에서 일어나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을 향해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공감한 20~30여 명의 주민들이 곧바로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독립만세’의 외침으로 호응하였다. 이에 연극 공연은 중단되고, 공연장은 만세시위의 현장으로 전환되었다. 만세시위 발생 소식을 접하고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되었다. 민영갑·이재만 등은 전날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들과 다시 모여 4월 2일 장날이었던 홍성시장으로 가서 제2차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에 동참하라는 민영갑 등 시위대의 호소에 곧바로 호응하여 시위 대열에 합류하였다. 민영갑·이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시장 곳곳을 행진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의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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