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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영

鄭大永

1901. 4. 27 ~ 1953.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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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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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陰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음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901년 4월 27일 충청북도 음성군(陰城郡) 음성면(陰城面) 초천리(草川里)에서 태어났다. 초천리 서당의 학생으로 김영익(金榮翼) 등과 함께 1919년 3월 28일 음성시장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음성면에서는 양준성(梁俊成)·김용진(金龍鎭) 등 천도교 인사들의 주도로 3월 18일 최초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초천리에 거주하는 김영익은 다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동지를 규합하기 위해 27일 서당을 운영하는 정기선(鄭騏善) 집을 방문하였다. 김영익은 서당의 학생들에게 “현재 조선 각지에서 조선독립을 희망하여 독립운동의 수단으로 왕성하게 대한국독립만세를 부르고 있다. 우리 일동도 내일 음성시장에 나아가 대한국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장에 오는 군중에게 호소하여 만세운동을 펼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라고 만세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최만득(崔萬得)·정민영(鄭玟永)·정문영(鄭文永) 등의 학생들과 함께 김영익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여 만세운동에 동의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음성시장의 장날이 바로 다음날인 3월 28일이었다. 이에 김영익 등의 동지들과 함께 즉시 만세시위의 준비에 착수하였다. 3월 28일 김영익·최만득·정민영·정문영과 함께 음성장터로 나갔다. 장터에 많은 주민들이 나와 가장 붐비는 시간대인 오후 2시경을 기다려 동료들과 함께 미곡상점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변의 주민들에게 한국의 독립을 위해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만세시위의 취지에 공감한 다수의 주민들이 호응하여 동참해 오자, 시위대열을 형성하고 김영익 등과 시위대를 지휘하여 음성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최만득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음성경찰서에서 조사받은 후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1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해 5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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