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모
鄭吉謨1896. 3. 23 ~ 1952. 10. 2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정산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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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4) 1896년 3월 23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정산면(定山面) 대박리(大朴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한자가 다른 정길모(鄭吉模)이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청양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5일 청양군 정산시장 만세시위에서 일제 헌병의 발포로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 권흥규(權興圭)가 사망하였다. 다음날인 4월 6일 권흥규의 시신을 운구하는 행렬에 참여하였다.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고 쓴 명정(銘旌)을 제일 앞에 세우고, 그 뒤로 많은 만장(輓丈)이 줄을 이었다. 운구는 목면(木面) 안심리(安心里) 고인의 자택을 향하였다. 운구가 지나가는 연로 각 마을에서도 상여를 대고 노제를 올리고 통곡하며 운구행렬에 동참하였다. 운구가 지곡리(池谷里)를 경유할 즈음 1,000여 명의 규모로 확대되었고, ‘독립만세’의 구호가 외쳐지기 시작하였다. 권흥규의 운구가 그 자체로 만세시위로 발전하게 되자, 일제는 정산의 헌병파견대 외에 청양군 및 공주(公州)의 헌병들까지 정산으로 급파하였다. 공주에서 출동한 일제 헌병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는 운구행렬을 보자마자 무차별적으로 발포하였다. 이로 인해 전날에 이어 권흥규의 조카딸 최윤안(崔胤安)과 김국삼(金國三)·유행길(柳行吉)·장응렬(張應烈)·윤광원(尹光遠)등이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후 만세시위에 적극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헌병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4일 청양헌병분견소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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