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섭
丁基燮1886. 7. 1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6)
관련 사건
- · 양주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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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6) 1886년 7월 17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미금면(渼金面) 평내리(坪內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미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3일 평내리 마을 구장 이승익(李昇翼)의 소집에 응하여 우보현(禹輔鉉)·김영하(金永夏) 등 100여 명의 마을 주민들과 함께 주막에 모였다. 이 자리에 이승익은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가 행정기관을 통해 배포한 「고유문(告諭文)」을 낭독하였다. 「고유문」의 내용은 “주민들은 쓸데없는 유언비어에 열중하여 되지도 않은 일에 광분하지 말라. 제국은 전승국이므로 일본의 한국 지배에 관해서는 조금도 변경의 여지가 없다”라는 것이었다. 이에 우보현·김영하 등과 함께 주민들의 앞에 나서서 구장의 「고유문」 대독에 야유를 보내고, “우리는 만세를 부릅시다”라고 주민들을 선동하였다. 이에 공감한 1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14일 전날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던 주막으로 150여 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이승익·우보현·김영하·이보영(李輔永)·이석준(李錫俊) 등과 함께 주민들을 지휘하여 평내리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가 소재한 금곡리(金谷里) 방향으로 행진하였다. 면사무소로 행진하는 도중에 일본인 도비타 린키치(飛田林吉)와 조우하였다. 도비타는 시위대를 가로막고 해산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이승익 등 다른 주도 인물들과 함께 “무슨 소리냐, 2천만 동포가 조선의 독립을 기뻐해 만세를 부르는 것이 정당하지 않은가”라고 반박하고 행진을 계속하였다. 결국 도비타의 신고로 출동한 일제 헌병대에 의해 만세시위는 강제 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대에 붙잡혀 조사받은 후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6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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