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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복

丁奎復

1886. 10. 3 ~ 1961.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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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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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龍仁)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용인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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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용인군 모현.포곡.수여면(3.28) 3.1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6년 10월 3일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포곡면(蒲谷面) 둔전리(屯田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8일 용인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서울로부터 남서부 지방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한 용인은 이러한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일찍 만세운동 소식을 파악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용인군에서는 3월 21일 일어난 원삼면(遠三面)의 만세시위 이후 3월 28일부터 4월 2일까지 집중적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원삼면 만세시위의 영향으로 둔전리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3월 28일 아침 마을 주민들에게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시위한다는 취지에 공감하여 만세시위 참여를 결의한 권명보(權明甫) 등 수십 명의 마을 주민들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주민들과 함께 시위대를 형성하고, 시위대의 선두에서 주민들을 이끌고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며 둔전리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 수여면(水餘面) 유방리(柳防里)로 행진하여 유방리의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이와 같은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만세시위 진압을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0년 1월 28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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