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巨奉
巨奉1899. 10. 15 ~ 1931. 2.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3)
관련 사건
- · 시흥군 서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3) 1899년 10월 15일 경기도 시흥군(始興郡)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당시 시흥군 서면(西面) 소하리(所下里)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명은 김인한(金仁漢)이다. 1919년 3월 27일 소하리에 사는 이정석(李貞石)이 만세 시위를 하다가 노온사리(老溫寺里) 주재소로 강제 연행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이정석의 아버지 이종원(李宗遠)은 3월 28일 마을 주민들에게 아들을 구해달라고 호소하였다. 이에 배재고등보통학교 학생 최호천(崔浩天)과 윤의병(尹宜炳)이 소하리와 가리대리(加里垈里) 주민 각 100여 명씩 총 200여 명을 이끌고 노온사리로 향하였다. 이 행렬에 참여하여 이종원·최정성(崔正成)·유지호(柳志浩)·최주환(崔周煥) 등과 함께 앞장섰다. 이때 최호천은 “곤봉 같은 것이나 돌을 가지고 가자”라고 말하였고 주재소 앞에 이르러서는 “만일 주재소 직원이 발포하거나 폭행을 하더라도 절대 퇴각하지 말라. 휴대한 돌이나 곤봉으로 대항하라”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사람들이 무장하였다. 노온사리에 도착했을 때 시위 군중은 약 300~500명으로 불어났고 밤 10시경 노온사리주재소를 포위하였다. 그곳에 근무하는 순사 아카마츠 이사무(赤松勇)와 순사보 가네자와 마사오(金澤成雄), 최우창(崔禹昌)·김정환(金定煥) 등은 주재소 안에서 소등을 하고 숨을 죽였다. 이에 시위대는 ‘이정석을 내놓아라’, ‘주재소를 불태우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주재소 앞 게시판을 부수고 뒷면 벽을 두드리며 반응을 살피었다. 아무 반응이 없자 주재소 안에 순사들이 없는 것으로 판단한 그는 최호천을 따라 순사보 최우창·김정환·가네자와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세 곳 어느 곳에도 아무도 없어 다시 주재소로 돌아왔다. 그때서야 주재소 안에 있던 아카마츠 순사가 불을 켜고 나왔다. 이정석을 풀어주라는 요구에 아카마츠는 이미 영등포경찰서로 이정석을 넘겼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시위 군중이 흥분하자 “내일 29일 영등포경찰서에 들어가니 그때 이정석을 석방하겠다”라고 말하였다. 최호천과 윤의병은 “오늘 저녁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내일 밤 다시 습격하기 위해 몰려와서 주재소를 불태우고 순사들을 쳐죽여도 괜찮겠는가”라고 말하며 몰아세웠다. 또 이정석의 아버지는 ‘계약서를 제출하라’라고 강박하였는데 아카마츠는 ‘틀림없이 방면하도록 하겠다’라고 다짐하였다. 이에 시위 군중은 만세를 부르고 해산하였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3월 28일 노온사리 만세 시위 참가자 다수가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최호천·윤의병·이종원·최정성(崔正成)·유지호(柳志浩)·최주환(崔周煥)과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8일 보안법 제7조, 조선형사령 제42조를 위반한 혐의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경성복심법원에서 일부 취소되어 징역 6개월이 최종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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