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昌烈
全昌188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관련 사건
- · 정평군 장원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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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1)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 장원면(長原面) 신흥리(新興里) 출신이다. 1919년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35세로, 1885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15일 함경남도 장원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7개 도시에서 만세운동이 일제히 일어났다. 함경남도에서는 천도교와 개신교 세력을 중심으로 만세시위 소식과 더불어 독립선언서가 유포되기 시작했다. 3월 2일밤에 이미 정평군 부내면(府內面)에 독립선언서가 배포되었다. 전국적인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박형인(朴亨寅)과 조문환(趙文煥)은 3월 15일 장원면 초원시장 장날을 이용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들은 베와 종이로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각각 2기와 25기를 제작하였다. 만세시위 당일 조문환으로부터 채동식(蔡東植)과 함께 만세시위 참여를 권유받았다. 조문환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결심하였다. 3월 15일 장원면 초원시장에서 시작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박형인·조문환은 시장에 모인 군중에게 미리 제작한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천도교도와 개신교인을 비롯해서 시장에 모인 370여 명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장명원은 상흥리 주민 40여 명을 인솔해서 초원시장으로 가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현장에 출동한 초원헌병주재소 헌병들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만세시위를 주도한 조문환과 시위에 참여한 인사들을 연행하였다. 이때 일제 군경에 의해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6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7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를 기각하였다. 이에 본인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인도에 기초한 의사발동이었으며, 조선 독립을 확실하게 믿었으며 조선인의 의무로써 만세를 불렀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며, 헌병에게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상고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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