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갑
全寅甲1882. 3. 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관련 사건
- · 1919년 온성군 영충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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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5) 1882년 3월 2일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영와면(永瓦面) 송북동(松北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 온성군 영충면(永忠面) 회덕동(懷德洞)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온성군에서는 1919년 3월 19일 온성 읍내에 독립선언서가 부착되는 것을 시작으로 만세시위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3월 20일 온성군의 일제 헌병대는 영와면 상화동(上和洞)에 거주하는 최성암(崔成巖)의 집에서 조선총독 유고문(諭告文)의 뒷면에 인쇄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1장을 발견하였다. 아울러 독립선언서를 온성 읍내에 부착한 혐의로 개신교 전도사 권순천(權順天)을 연행하였으며, 국경 밖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온성 일대에 들어오는 것을 미연에 차단하고자 하였다. 온성군의 만세시위는 4월 초순 영충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4월 2일 500여 명의 시위대가 영충면 북창평동(北蒼坪洞) 북창평헌병주재소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4일에도 오전 10시경 영충면 회덕동 회동교(懷洞橋)에서 천도교도 전창우(全昌禹)를 비롯해서 김창욱(金昌旭) 등이 주도하는 만세시위가 거행되었다. 150여 명의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와 북창평시장 일대를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일제 헌병대의 해산 명령을 무시하고 헌병주재소와 면사무소를 향해서 돌을 던지고 막대를 휘두르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일제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고, 이로 인해 최기철(崔基哲) 등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후 영와면 주민 67명은 최기철의 유가족에게 의연금을 모아 전달하기도 하였다. 이후 온성군 만세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1919년 4월 25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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