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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利鎭

田鎭

1892. 4. 15 ~ 1944.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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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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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2년 4월 15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은하면(銀河面) 장곡리(長谷里)에서 태어났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9일 장곡리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은하면에서는 3월 21일 면사무소 소재지인 대천리(大川里)에서 최초의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두 번째 시위는 4월 9일 장곡리에서 벌어졌다. 전명규(田明圭), 전순삼(田順三) 등의 동지와 함께 사전에 전국적인 시위 상황을 파악하고, 의기투합하여 장곡리 만세운동을 조직하고 주도하였다. 거사일인 4월 9일 밤,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마을 주민들을 규합하여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장곡리의 만세시위는 다른 지역으로 파급되지 못하고 고립적으로 전개되었다. 은하면의 지형적 특징이 산지와 구릉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매우 불편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날 만세시위 직후 장곡리로 파견된 일제 경찰이 만세운동 참여자를 색출, 검거하였다. 이 과정에서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혀서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함께 붙잡힌 사람은 모두 11명이었다. 일제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 주도자로 인정되어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6일 홍성경찰서의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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