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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 9. 3 ~ 1945.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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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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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富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부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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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부천군 계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4년 9월 3일 경기도 부천군(富川郡) 계양면(桂陽面) 이화리(梨花里, 현 인천시 계양구 이화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4일 부천군 계양면 장기리(場基里, 현 인천시 계양구 장기동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4일 오후 2시경 계양면 장기리시장에서 장날을 맞이하여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오후 5시경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운동을 주도하던 심혁성(沈爀誠)이 붙잡히고 300여 명의 군중은 잠시 흩어졌으나, 곧 임성춘(林聖春) 등 200여 명의 군중이 다시 모여 면사무소로 행진하며 심혁성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임성춘 등의 도움으로 심혁성이 도주하는 과정에서 일부 군중은 경찰이 심혁성을 추격하려는 것을 저지하였는데, 그 속에 있던 이은선(李殷先)이 경찰의 칼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분노한 이은선의 육촌 이담(李墰)은 그의 죽음의 원인을 규탄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규합하고자 하였다. 이담은 계양면장 안병혁(安炳赫)과 면서기 이경응(李敬應)에게 통문작성을 부탁하여 “밤 12시에 계양면사무소 앞에 집합하라”는 내용을 담은 통문 6여부를 각 구장에게 배포하였다. 통문의 내용을 전달받고 24일 밤 12시 마을주민 최성옥(崔成玉)·채규명(蔡奎明)·이공우(李公雨) 등 200여 명과 함께 계양면사무소 앞에 모였다. 이은선의 친족들은 면사무소의 유리창을 부수며 격렬히 항의하였고, 이때 면사무소 의자를 부수어 불 속에 던지기도 하였다. 면서기 이경응이 결국 오지 않자 분노한 이담을 따라 1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선주지리(仙住地里)에 위치한 이경응의 집으로 가서 외벽, 대문 등을 주도적으로 파괴하였다. 이후 다시 면사무소 앞으로 이동하여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붙잡혔다. 1919년 10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 등의 혐의로 징역 10월(미결구류일수 중 90일 본형 산입)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11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즉각 상고했으나 12월 1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송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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