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진
田禹鎭1883. 2. 25 ~ 1964. 11.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은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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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883년 2월 25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은하면(銀河面) 장곡리(長谷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9일 장곡리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은하면에서는 3월 21일 면사무소 소재지인 대천리(大川里)에서 최초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대천리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난 지 약 3주 뒤인 4월 9일 장곡리에서 새로운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전명규(田明圭)·전순삼(田順三)·전치일(田致一)·전태용(田太用)·전만진(田萬鎭)·박순학(朴順學)·이영숙(李永淑)·이용우(李龍雨)·이성순(李聖純)·유학선(劉學先) 등의 동지들과 함께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을 인지하고, 이들과 뜻을 모아 장곡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거사일인 4월 9일 밤, 동지들과 함께 마을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의 취지를 호소하고, 이에 공감하여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는 만세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은하면은 산지와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시위가 고립적으로 전개되었고 다른 지역으로 파급되지 못하였다. 이 날 만세시위 직후 장곡리로 파견된 일제 경찰의 만세운동 참여자 색출, 검거 활동 과정에서 전순삼·전치일 등 다른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이때 체포된 사람은 모두 11명이었다. 일제 경찰의 조사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사실이 인정되어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6일 홍성경찰서의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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