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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龍煥

田煥

1896. 10. 19 ~ 1975.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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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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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강계(江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강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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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896년 10월 19일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 강계면(江界面) 동부동(東部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8일 강계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당시 잡화상을 경영하면서 일반 사회 유지를 대표하였다. 3월 15일 밤에 강계읍내 각소에 ‘독립만세’라고 적힌 종이가 살포되는 사건도 있었지만 강계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만세시위가 늦었다. 서울의 만세운동과 뒤이어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 소식이 강계 지역에도 전해지면서 영실중학교 교사 김경하와 동료 교사 정준(鄭儁), 교회 장로이자 명신학교 학감 한봉민(韓奉珉)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영실중학교 학생들이 만세시위를 주동하려고 하자 김경하(金京河)가 일단 때를 기다릴 것을 주문하며 만류하였고, 대신 학생들은 태극기 2,000여 장을 제작해서 여러 곳에 은닉한 채 대기하였다. 김경하 등은 점차 기독교 인사뿐만 아니라 천도교 측과 일반 유지들까지도 접촉하며 만세시위에 대한 의사를 타진하였다. 이에 동의하여 21명의 동지들이 함께 한 3월 24일 회의에 참여하였다. 이 회의에서 만세시위 거행을 결의하고, 시위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 연판장에 서명 날인하였다. 이튿날인 25일에는 구체적인 만세시위 준비 작업을 논의하였다. 만세시위 성사의 관건은 서울에서 발포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는 것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독립선언서 준비를 맡았던 기독교 측에서 각 방면으로 탐문하던 중 천도교 신도인 송기숙(宋紀叔)이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교섭하였으나 후환이 두려워서 내놓기를 꺼려하였다. 그런데 당시 주하룡(朱河龍)이 평양신학교에 재학 중이었다가 만세운동 이후 휴교로 귀향하였는데, 주하룡이 평양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져온 것으로 꾸미기로 하고 송기숙으로부터 선언서를 제공받아 2,000장을 복사 제작하였다. 시위 준비를 마친 후, 4월 8일 11시 미리 약속한 대로 강계읍내 남장대 예배당의 종소리에 맞춰 학생들이 일제히 뛰어나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돌리며 만세시위를 시작했고 장 보러 온 사람들까지 합세하여 곧 수천 명의 군중으로 불어났다. 시위대는 남문 방면에서 시작하여 헌병분견소를 지나 북문으로 행진하였는데, 북문에 다다랐을 즈음, 갑자기 북문 성루 위에서 매복하였던 수비대가 군중을 향해 발포하여 시위대의 주모자인 정준 등 4인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고 다수의 부상자도 나왔다. 이후 일제 군경에 의한 검거가 이루어져 29명이 붙잡혔는데 이때 함께 붙잡혔다. 이후 재판에 회부되어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7월 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동일한 형량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해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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