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禮淳
全淳1896. 8. 12 ~ 1933. 5.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의열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안주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6년 8월 12일 평안남도 안주군(安州郡) 동면(東面) 명학리(鳴鶴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천안(天安)이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피혁상(皮革商)으로 상업에 종사하면서 안주 읍내 장로교 동예배당에 다니고 있었다. 3월 1일 안주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안주군 예배당의 목사는 김찬성(金燦星)이었는데,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이후 안주에서 교인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등 적극적인 민족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장로교 지도부를 통해 만세운동의 준비 소식을 접한 김찬성은 김화식(金化湜)·박의송(朴義松) 등 10여 명의 신도를 모아 안주에서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 계획에 처음부터 참여하여 서울에서 온 독립선언서 약 4,000장을 전달받아 이를 등사하는 데 적극 협력하였다. 비밀리에 총 1만 여장의 선언서를 등사한 후, 이를 주변 지역에 미리 배포하였다. 또한 교인들을 설득하며 참여를 독려하였다. 3월 1일 안주 장날을 맞아 안주 읍내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곳에서 김찬성 및 동지 10여 명, 예배당 신도 400여 명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미리 챙겨 온 독립선언서를 배부하면서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설파하였다. 당시 일제 헌병은 이를 전도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 그 덕에 서문 밖에서 출발한 시위대는 일제 헌병의 방해 없이 시내를 거쳐 건인리(建仁里)·청교리(淸橋里) 방면을 향해 행진하면서 만세를 부르고 독립선언서를 배부할 수 있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일제 헌병들이 주동자 체포에 나서면서, 3월 1일 밤에 붙잡혀 안주헌병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안주 군민들은 이 소식을 듣고 3월 2일 새벽부터 헌병대를 둘러싸고 주도 인물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헌병들은 석방을 요구하는 민중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이를 계기로 3월 3일에도 잇달아 만세운동이 발발하는 등 안주 만세운동이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4월 10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해 5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즉각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0년 4월 26일 사면되어 풀려났다. 1921년 9월에는 중국 동삼성으로 건너가 의열단(義烈團)에 참여하였다. 이후 김찬성과 연락하여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군자금 조달과 연락을 담당하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하다가 일제 헌병에 의해 붙잡혔다. 이 사건으로 1922년 4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받아 옥고를 겪고 1927년 4월에 만기 출옥으로 풀려났다. 이때 받았던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해 1933년 5월 1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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