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균
全榮均1903 ~ 1919. 4.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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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강원도 홍천군(洪川郡) 내촌면(乃村面) 물걸리(物傑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03년생으로 추정된다. 천도교인이었고,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한약방을 운영하였다. 1919년 3월 말경 같은 마을에 사는 천도교 장두(狀頭) 김덕원(金德元)과 부장두 전성렬(全性烈)·이문순(李文淳)·전우균(全祐均) 등과 함께 물걸리의 천도교인들과 뜻을 모아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자택 다락방에서 시위를 논의하였고, 대형 태극기 3점과 군중에게 나누어줄 작은 태극기 300장을 직접 제작하는 등 구체적인 준비를 하였다. 이어 천도교인들을 통해 내촌면의 와야리(瓦野里)와 문현리(文峴里), 화촌면(化村面) 장평리(長坪里), 서석면(瑞石面) 수하리(水下里) 등지에 시위 계획을 알려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외에도 인접한 인제군(麟蹄郡) 기린면(麒麟面) 상남리(上南里)와 내면(內面) 방내리(坊內里)의 천도교인들을 규합하여 시위 계획을 알리고 주민들을 동원케 하였다. 이처럼 시위 계획을 용이하게 알릴 수 있었던 데는 물걸리의 지리적 이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물걸리는 면사무소나 헌병주재소와 같은 관공서는 없었지만 상업적으로 번창한 곳이었다. 영동과 영서 지역의 물화가 교류하는 요충지였으며, 강원도 내륙 교통의 요지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었다. 만세시위를 준비하던 중, 4월 1일과 2일에 홍천면과 동면(東面)에서 각각 만세시위가 있을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리자 3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그런데 4월 2일에 거사를 같이 계획하던 이장 김홍이가 밀고를 하면서 헌병보조원 홍재호(洪在浩)·윤모(尹某)가 장터에 나타나 염탐하면서 동정을 살폈다. 김덕원과 전성렬이 이들을 만나 비밀을 지킬 것을 설득하였지만 두 사람은 거부하였다. 분노한 김덕원과 전성렬이 두 사람을 창고에 가두었으나 탈출하였다. 4월 3일 정오 무렵, 운영하던 한약방에 주도자들과 함께 모여 태극기를 게양하고 장꾼과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다. 이어 김자희(金自喜)·이기선(李基先)과 각각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장터 가운데로 나아갔다. 이때 양도준(梁道俊)이 징을 울려 만세시위가 시작되었음을 알렸고, 전성렬이 사회를 보고, 김덕원이 개회 연설을 하면서 만세시위를 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였다. 전우균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이문순이 만세삼창을 하였다. 이문순의 선창에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외쳤고 시위대의 선두에서 장터를 돌면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마친 후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가 있는 도관리(道寬里)로 행진하였다. 그때 잠복하고 있던 헌병들이 갑자기 나타나 공포탄을 쏘며 시위를 저지하였다. 그럼에도 계속 전진하자 7명의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하여 총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무차별적으로 날아든 총탄에 시위대는 흩어졌고 함춘선(咸春先), 승만수(承萬壽) 등 20여 명은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김자희·양도준·이기선·이순극(李順克)·연의진(延義鎭)·이여선(李麗先)·전기홍(全基弘)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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