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양준
田養畯1895. 3. 21 ~ 1946. 3.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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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5년 3월 21일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사원면(沙院面) 사리원서리(沙里院西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일 사리원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으며, 당시 대금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사리원은 경의선과 황해선의 분기점에 위치하였고, 황주군(黃州郡)·서흥군(瑞興郡)·재령군(載寧郡)과 인접한 교통의 요지였기에, 독립선언서와 만세운동 소식을 신속하게 접할 수 있었다. 사리원의 인근에 위치한 황주읍 남천장터에서 3월 2일 만세시위가 발생한 것도 사리원 주민이 만세시위를 전개하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 2월 28일 천도교 중앙총부 월보과장(月報課長) 이종일(李鍾一)은 황해도 곡산군(谷山郡)에 거주하는 이경섭(李景燮)에게 독립선언서 약 1,000장을 황해도 지역에 전달하도록 하였다. 이경섭은 서흥군 천도교도 박동주(朴東周)에게 570장을 주었으며, 수안군(遂安郡) 천도교구장 안봉하(安鳳河)에게 70여 장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해주군(海州郡)·곡산군·사리원에 선언서를 배포하면서 만세시위의 조직을 권유하였다. 사리원에 거주하는 이기호(李基浩)와 이균형(李均亨)은 평소 조선의 국권 회복과 독립을 염원하였다. 그들은 3월 1일 만세운동이 발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이에 사리원의 천도교인과 개신교도에게 비밀리에 연락을 취했으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3월 3일 사리원 장날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3월 3일 오후 4시경 사리원장터에 모인 400~5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김승신(金承信)·최정건(崔貞健)·함치각(咸致恪)·나한빈(羅漢彬)과 함께 시위 행렬을 주도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치었다. 사리원장터에 모인 사람들도 만세시위에 동조해서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시위대의 규모가 늘어나자 일제 군경은 강제로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시위를 주도한 인물들과 함께 체포하였다. 3월 3일 사리원장터 만세시위를 이끈 혐의로 일제 관헌에 의해서 붙잡힌 후 재판에 회부되었다. 4월 20일 해주지방법원 서흥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서 항소하였지만 그해 5월 2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7월 3일 이 또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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