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삼
田順三1874. 9. 15 ~ 1940. 12.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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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74년 9월 15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은하면(銀河面) 장곡리(長谷里)에서 태어났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9일 장곡리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은하면 최초의 만세시위는 3월 21일에 일어났다. 면소재지인 대천리(大川里)에서 다수의 주민들이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다만 이 만세시위는 아직까지 주도자나 구체적인 만세시위의 양상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지역으로 파급되지도 못하였다. 대천리 만세시위로부터 약 3주 후인 4월 9일 장곡리에서 전명규(田明圭)·전이진(田利鎭)·전치일(田致一)·전태용(田太用)·전만진(田萬鎭)·박순학(朴順學·春三)·이영숙(李永淑)·이용우(李龍雨)·이성순(李聖純)·유학선(劉學先)·전우진(田愚鎭) 등의 동지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은하면에서 일어난 두 번째 만세시위였다. 4월 9일 밤 동지들과 함께 마을 주민들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장곡리 만세시위 직후 일제 경찰은 시위에 참여한 주민들을 색출하기 위해 경찰대를 장곡리로 파견하였다. 일제 경찰들의 만세시위 참여자 색출, 검거 과정에서 다른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이때 체포된 사람은 11명이었다. 1919년 4월 16일 홍성경찰서의 즉결심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점이 인정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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