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길
全壽吉1896. 7. 15 ~ 1951. 1.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1)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1) 1896년 7월 15일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양변면(兩邊面) 금마리(金馬里, 현 영월군 주천면 금마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전수길(全守吉)을 사용하였다. 1919년 영월군 주천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영월군 주천장터 만세운동은 4월 20일 영월 군수 석명선(石明瑄)이 금마리를 방문할 때 실행될 예정이었다. 만세운동을 계획한 박광훈(朴光勳)·이병익(李炳翼) 등 주도자들은 태극기를 제작하고, 「만세연명부(萬歲連名簿)」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이때 주동자들로부터 시위 계획을 듣고 명부에 서명할 것을 권유받았다. 평소 만세운동이 조국의 독립을 위한 항일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명부에 서명하며 동참을 약속하였다. 그 외에도 박수경(朴受景)·박수항(朴受恒)·탁은상(卓殷相)·조종협(趙鐘協) 등 많은 주민들이 서명하였다. 그러나 군수의 강연 일정이 변경되면서 시위는 불발하였다. 다음날 21일 오전, 주도자들로부터 군수의 강연이 당일에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주민들과 시위를 위하여 집을 나섰다. 시위 군중에는 금마리 주민뿐만 아니라 장날을 맞아 장터로 향하던 주민들까지 합류하면서 200명이 넘었다.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군수 일행이 지나갈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무렵, 강연을 마친 군수가 주천리로 돌아갈 때 태극기를 든 시위대와 대치하게 되었다. 선두에 있던 주도자들은 군수에게 태극기를 주며 만세를 부를 것을 요구하였다. 군수는 군중의 기세에 눌려 마지못해 ‘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억지로 시위대의 선두에 서게 되었다. 이윽고 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군중과 함께 목청껏 ‘독립만세’를 연호하면서 태극기를 흔들며 주천장터와 마을을 행진하였다. 박광훈과 이병익은 군수와 서기 등 일행들에게도 만세연명부에 서명하도록 하였다. 시위는 군중이 자진 귀가하면서 마무리되었다. 군수가 돌아간 저녁 무렵, 주천헌병파견소 헌병들이 마을로 와서 만세시위 관련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하였다. 박광훈·이병익 등 주동자들을 포함하여 명부에 이름을 올린 마을 주민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을 받았다.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재판 결과에 불복하여 항소하면서 그해 7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어 징역 6월로 감형되었다. 다시 한 번 상고했지만 같은 해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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