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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수

全聖洙

1886. 3. 2 ~ 1962.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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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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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횡성(橫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횡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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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3)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3) 1886년 3월 2일 강원도 횡성군(橫城郡) 횡성면(橫城面) 읍상리(邑上里)에서 태어났다. 천도교인이다. 1919년 4월 1일 횡성읍 장터의 만세운동은 횡성군의 천도교인들이 주도한 두 번째 만세운동으로, 3월 27일에 천도교 봉훈(奉訓) 신재근(申在根), 대교구장(大敎區長) 최종하(崔宗河), 정곡면(井谷面) 상안흥리(上安興里, 현 안흥면 상안흥리)의 장도훈(張道勳)과 김인경(金麟卿)이 주동이 되어 만세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시위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재근· 장도훈 등이 체포되면서 해산하였다. 이후 천도교 측에서는 다시 한 번 만세시위를 계획하였고, 최종하의 주도하에 천도교인들이 결집하였다. 시위계획을 듣고 천도교인의 한사람으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천도교인들이 다시 만세시위를 계획한다는 소식에 횡성읍 청년회에서도 동참하였고, 내지리(奈之里) 감리교회 정해경(鄭海璟)과 탁영재(卓英才)도 교인들을 모아 앞장섰다. 만세시위가 천도교인와 감리교인, 마을 청년들까지 동참하면서 대규모로 전개되었다. 거사 당일인 4월 1일,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횡성읍 장터로 향하였다. 천도교 측 청년들은 아침부터 장터 길목에 나와 장꾼들에게 시위계획을 알리고 동참을 유도하는 한편, 상점들을 철시토록 하였다. 그리고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함께할 천도교인들과 모여 시위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오후 5시경, 군중 앞에 정해경이 나와 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어서 시위대는 ‘대한민국만세’를 외쳤고, 1,300여 명의 군중도 동시에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조상렬(趙常烈)·김윤배(金允培)·김순서(金順瑞) 등 천도교인들과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고 장터를 행진하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군중과 헌병분견소로 향하였다. 헌병분견소에서는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이미 원주에서 온 병력까지 배치하여 시위에 대비하고 있었다. 시위대와 함께 헌병분견소로 진입하는 동시에 총탄이 날아왔다. 어둠 속에서 날아온 총탄을 미쳐 피할 사이도 없이 하영현(河永賢)·강달회(姜達會)·강승문(姜勝文) 등 5명이 현장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총탄에 맞아 부상을 입은 군중도 적지 않았다. 이때 정해경·조상렬과 같이 붙잡혔다.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재판 결과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그해 7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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