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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석현

全錫玄

1884. 5. 2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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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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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楊平)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평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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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양평군 양동면(4.7) 3.1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2) 1884년 5월 27일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양동면(楊東面) 석곡리(石谷里)에서 태어났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7일 같은 동리의 이종성(李鍾聲)과 함께 양동면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양평군에서는 3월 10일 서종면(西宗面) 문호리(汶湖里)에서 수백여 명이 참여한 최초의 만세시위가 일어난 이래 청운면(靑雲面)·용문면(龍門面)·강하면(江下面)·양서면(楊西面)·고읍면(古邑面)·양근읍(楊根邑) 등 각지에서 3월 23일부터 4월 초까지 집중적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대체로 산지로 이루어진 지형의 자연환경과 함께 지리적으로 양평군의 남동쪽 끝에 위치한 양동면에는 이와 같은 만세시위의 소식이 뒤늦게 전달되었다. 평소 교류관계를 통해 신뢰가 깊었던 이종성과 의기투합하여 양동면에서의 만세시위를 논의하였다. 서로 간의 협의에서 만세시위의 거사일을 4월 7일로 결정하였다. 이날은 양동면 석실리(石室里)의 양동장터의 장날이기 때문에 많은 주민들이 모일 것을 예상하였기 때문이다. 이날 양동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여 장날의 양동장터에 모인 주민들과 함께 만세행진을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후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이종성과 함께 만세시위에 대한 격문을 작성하여 양동면의 각 마을에 배포하면서 주민들을 규합하였다. 거사일인 4월 7일 양동면사무소 앞에 격문을 통해 만세시위를 참여를 결의한 많은 주민들이 모였다. 만세시위의 준비과정에서 예상한대로 장날을 맞아 양동장터에 나온 주민들까지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이종성과 함께 다시 만세시위의 결의를 다지고, 양동면사무소 앞으로 갔다. 주민들 앞으로 나가 독립선언문을 큰 목소리로 낭독하였다. 뒤이어 이종성이 ‘대한독립만세’를 우렁찬 목소리로 선창하였다. 이에 면사무소 앞에 모인 주민들이 일제히 호응하여 ‘대한독립만세’를 따라 외쳤다. 이후 이종성과 함께 시위대를 지휘하여 대열을 형성하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양평 읍내를 향해 행진하였다. 양동의 시위대가 지나는 길목마다 주변의 주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따라 외치며 시위에 동참하여 시위대의 규모는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었다. 이처럼 시위대의 규모가 확대되자, 진압에 엄두를 내지 못한 청운면의 일제 헌병대가 양평으로 지원 병력을 요청함에따라 기마헌병대 수십명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가로막고 해산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에 맞서 이종성과 함께 시위대를 지휘하여 시위를 지속하였다. 이에 일제의 기마헌병대는 비무장의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인 총기 발포로 대응하여 만세시위를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의 상당수가 사망하거나 부상당했고, 이종성과 함께 일제 기마헌병대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24일 경성지방법원 여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일제의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옥고를 겪었다. 1920년 4월 24일 만기 출소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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