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전석구

全錫九

1896. 10. 24 ~ 1970. 12. 8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전석구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1896년 10월 24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쌍책면(雙冊面) 하신리(下新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완산(完山)이고, 자(字)는 문오(文五), 호(號)는 송강(松岡)이다. 이명으로 전오성(全五成)을 사용하였다. 부친은 전중경(全中慶)이고 모친은 연안 차씨이다.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과 영남 유림의 태두인 면우(俛宇) 곽종석(郭鐘錫)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스승 곽종석과 김창숙을 비롯해서 경상도·전라도·충청도 유림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제1차 유림단 의거, 즉 파리장서사건에 참여하였다. 137명의 유림의 일원으로 김상진(金相震)과 함께 독립을 호소하는 유림단 탄원서에 서명하였다. 김창숙은 2,674자에 이르는 장문의 글을 중국 상하이(上海)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임시정부는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 대표로 파리에 있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유림 탄원서를 전달하였다. 이와 동시에 임시정부는 탄원서를 영문으로 번역하였으며 3,000부를 인쇄해서 파리강화회의를 비롯해서 중국과 조선 각지로 배포하였다. 일제 군경은 4월 2일 상주 만세시위를 주도한 송회근을 연행해서 심문하는 과정에서 유림들이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탄원서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이에 일제 군경은 서명에 참여한 장석영(張錫英)·송준필(宋浚弼)·성대식(成大湜)을 연행하였다. 그리고 4월 18일에는 곽종석을 체포하였으며, 그 밖에도 파리장서에 서명한 20명을 연행하였다. 일제 군경의 혹독한 심문 속에서도 연행된 인사들은 서명에 참여한 인사들의 명단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19년 6월 상하이에서 각 지역의 향교로 발송한 파리장서 한문본이 일본 군경에 의해서 발각되었다. 그러면서 파리장서에 서명한 137명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동향 출신인 전석윤(全錫允)과 함께 파리장서에 거주지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으로 기록하였다. 또한 호적상의 이름을 오성(五成)으로 바꿈으로써, 일제 경찰의 파리장서 서명자 색출 및 연행을 피할 수 있었다. 한편 1919년 3월 21일 이원화(李源華)·전하선(全夏善)·성만영(成萬永)·김덕명(金德明) 등이 주도한 합천군 초계면(草溪面) 만세시위에 연락책으로 참여하였다는 내용이 2007년 고향에 세워진 애국지사 송강 전공 추모비에 전해지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