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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士進

188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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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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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철원(鐵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철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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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4)

관련 사건

  • · 1919년 철원군 갈말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4) 강원도 철원군(鐵原郡) 갈말면(葛末面) 문혜리(文惠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판결문에 당시 나이가 37세로 기록되어 있어 1883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11~12일 갈말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갈말면의 만세운동은 같은 마을에서 서당 훈장 신성규(申聖奎)와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학생 김칠룡(金七龍)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3월 11일 밤에 만나 갈말면에서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결의하고, 거사일을 다음날인 12일로 정하였다. 이후 문혜리 사람들을 중심으로 뜻을 함께 할 사람들을 규합하였다. 이때 김학길(金學吉)·김경삼(金敬三)·김상보(金相保) 등과 함께 동참하였다. 이어서 이웃 마을인 내대리(內垈里)의 임낙호(任洛鎬), 동막리(東幕里)의 윤호병(尹浩炳), 토성리의 황철성(黃徹性) 등이 합류하였다. 이후 동지들과 함께 각 마을에서 집집마다 한 사람씩 만세시위에 참가하도록 권유하였다. 그리고 토성리·동막리·내대리·도창리(道昌里) 주민에게는 청양리헌병주재소(淸陽里憲兵駐在所)가 있는 지경(地境)터에서, 문혜리와 군탄리(軍炭里) 주민들은 갈말면사무소가 있는 어음재에 모이도록 하였다. 3월 12일 아침 주도자들과 함께 문혜리와 군탄리 주민들을 이끌고 거사 장소인 어음재에서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한편, 토성리·동막리·내대리·도창리 주민들도 새벽부터 이동해 지경터에 집결하였으며, 임낙호와 윤호병이 선두에서 주민들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펼쳤다. 오후 1시경 만세시위를 하던 토성리·동막리 등의 주민들이 지경터에서 문혜리·군탄리 주민들이 모여 있는 문혜리로 이동하였다. 오후 늦게 지경터에서 출발한 시위대가 문혜리에 도착해 합류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에 달하였다. 이후 선두에서 대규모 주민들을 이끌고 지포리(芝浦里)에 위치한 갈말면사무소로 향하였다. 면사무소 앞에 이르러 시위대와 함께 면장 황희수(黃熙秀)와 직원들을 찾았지만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시위대는 면사무소와 주변을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김경삼·김학길 등과 함께 선두에서 시위대를 지휘하였으며, 저녁이 될 때까지 문혜리에서는 만세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저녁 무렵 면장 황희수가 돌아와 만세시위에 동참하면서 열기는 점점 더 높아져 갔다. 밤이 될 때까지 만세시위가 이어졌지만, 지포헌병주재소 헌병들이 출동해 만세시위 중지를 명령하면서 탄압하자 결국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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