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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도

張興道

1865. 7. 1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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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장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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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간성(杆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간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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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65년 7월 17일 강원도 간성군(杆城郡) 수동면(水洞面) 외면리(外沔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본적지인 양구군(楊口郡) 동면(東面) 팔랑리(八郞里)로 이주하였다. 이명은 장덕환(張德煥)이며 천도교인이다. 55세인 1919년 4월 3일 양구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양구군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은 양구면 용호리(龍湖里)의 정승원(鄭承源)과 죽곡리(竹谷里)의 최우명(崔遇明), 함춘리(含春里)의 김병하(金炳夏) 세 사람이었다. 주도자 세 사람 모두 천도교인으로 양구군 만세운동은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다. 주도자들은 천도교 교주 손병희(孫秉熙)의 항일독립정신을 이어받아 양구군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4월 5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이후 양구군의 천도교인들을 규합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동면 팔랑리에서는 김창헌(金昌憲)의 주도하에 천도교인들을 규합했는데, 이때 그의 권유를 받아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주도자들은 일제의 감시가 삼엄해지자 거사 날짜를 4월 2일로 앞당겼으며, 이는 다시 갑자기 내린 눈으로 3일로 늦춰졌다. 거사 당일인 4월 3일, 아침 일찍 죽곡리의 최우명 집으로 향하였다. 그 자리에는 김명옥(金明玉)·장호면(張鎬眠)·최기호(崔寄浩)·박의순(朴義淳) 등이 모여 있었다. 이후 천도교인들과 함께 최우명의 집을 나서 최영구(崔榮九)가 만든 태극기를 앞세우고 죽곡리를 넘어 양구군청이 있는 양구 읍내로 향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군청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며 시위를 펼쳤다. 천도교인의 시위는 급히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하여 제지당하였고 현장에 있던 주도자 등 18명이 모두 붙잡히면 만세운동도 끝이 나게 되었다. 이때 동지들과 함께 붙잡힌 후 재판에 회부되었다.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항소하였지만 6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상고심이 열린 8월 14일 고등법원에서도 상고가 기각되고 옥고를 겪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수감 중 이듬해 4월 5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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