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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면

張鎬眠

1868. 8. 1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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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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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고성(高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고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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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868년 8월 18일 강원도 고성군(高城郡)에서 태어났다. 양구군(楊口郡) 동면(東面) 팔랑리(八郞里)로 이주하였다. 이명은 장호민(張好民)이다. 천도교인이며, 1919년 4월 3일 양구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양구군에서 만세운동을 처음 계획한 인물은 용호리(龍湖里)에 사는 정승원(鄭承源)과 함춘리(含春里)의 김병하(金炳夏), 죽곡리(竹谷里)의 최우명(崔遇明) 세 사람이었다. 이들은 3월 30일 천도교구실에 모여 양구군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4월 5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거사일이 정해진 이후 주도자들은 양구 지역의 천도교인들에게 비밀리에 계획을 알리고 동참을 권유하였다. 팔랑리에서는 김창헌(金昌憲)이 적극적으로 나서 만세운동 계획을 알렸는데, 이때 이 계획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면서 참여하였다. 정승원, 김병하 등이 중심이 되어 만세운동이 준비되고 있던 때에 일제의 감시가 더욱 심해지자 부득이 거사일을 4월 2일로 앞당겼다. 이 소식을 접하고 거사일을 기다렸지만, 4월 2일에는 전날 밤부터 눈이 내리면서 다시 3일로 미루어졌다. 4월 3일 거사 당일 약속한대로 아침 일찍 죽곡리에 사는 최우명의 집으로 향하였다. 최우명의 집에는 용호리·동수리(東水里) 등지에서 온 최기호(崔寄浩)·최영구(崔榮九)·김명옥(金明玉)·박의순(朴義淳) 등이 모여 있었다. 이후 천도교인들과 함께 최영구(崔榮九)가 미리 제작한 태극기를 앞세우고 죽곡리 거리로 행진하였다. 시위대를 이끌고 죽곡리를 지나 양구군청이 있는 양구읍내로 나아갔으며 읍내에 있는 군청 앞에서 이르러 한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 시위에 일제 경찰이 급히 출동하여 시위대를 막아섰고, 현장에 있던 18명의 참가자를 체포하면서 만세운동은 끝이 났다. 이때 다른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항소하였으나, 그해 6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면서 만세운동이 위법이 아니라는 점을 강변하였지만, 같은 해 8월 1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던 중, 1920년 4월 5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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