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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희

張祉熙

1895. 11. 26 ~ 1969.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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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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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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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칠곡 석적면(4.9)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5년 11월 26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석적면(石積面) 중동(中洞)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9일에 칠곡군 석적면 중동 만세시위 주도하였다. 평소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것에 대해 분개했고 국권 회복을 바라면서 전국 각지의 만세시위에 주목하고 있었다. 마침 4월 8일 밤에 칠곡군에 인접한 여러 지역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는데, 선산군(善山郡) 구미면(龜尾面) 임은동(林隱洞)에서는 300여 명의 사람이 모여 밤늦게까지 독립 만세를 외치는 일이 있었고, 같은 시기 강 건너편 성주군(星州郡)에서도 사람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는 일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중동에서도 만세시위를 실행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에 4월 8일 장영창(張永昌)·장도식(張道植)과 함께 형 장철희(張哲熙)의 집에 모여 다음날인 4월 9일 만나서 중동의 뒷산에 올라 ‘조선독립만세’를 외친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4월 9일 밤 9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장영창 등의 석적면 중동 청년 22명과 함께 중동 동쪽 편 뒷산에 올라 ‘한국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며 만세시위를 진행하였다. 직후 달려온 일제 경찰은 강제로 시위를 진압하고 참여자 21명을 붙잡았는데, 이때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후 조사 과정을 거친 다음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모두 8명에 달하였다. 1919년 5월 2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으나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6월 2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로 감형되었다. 이후 다시 상고하였으나 9월 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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