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귀
張日貴1881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3)
관련 사건
- · 음성군 원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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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3) 충청북도 음성군(陰城郡) 원남면(遠南面) 문암리(文岩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고향 마을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음성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충북 음성군에서는 장날이었던 1919년 3월 28일 장터에서 처음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음성군에서는 4월 초순에 집중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4월 5일 원남면에서 일어난 보천리(甫川里)의 보천장터 만세시위부터 4월 11일 전개된 주봉리(住鳳里) 만세시위까지 약 3회에 걸쳐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원남면에서는 4월 5일 보천장터에서 첫 번째 만세운동이 있어났는데 이날은 보천장터의 장날이었다. 당시 보천장터 만세시위 주도자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날 장터에 나갔다가 장터 한복판에서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공감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서정오(徐廷五)·이교설(李敎卨) 등 주변의 주민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주도자의 지휘에 따라 ‘대한독립만세’를 큰 목소리로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만세운동의 취지에 공감한 많은 주민들이 속속 만세시위에 동참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어느새 200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주민들과 함께 시위대열을 형성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시장 곳곳을 행진하였다. 원남면에서 지속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일제는 음성수비대를 원남면으로 파견하여 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조사, 색출 및 체포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서정오·이교설 등과 함께 붙잡혔다. 일제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원남면의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이 인정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22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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