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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환

張寅煥

1872. 8. 19 ~ 1938.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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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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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瑞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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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서산군 대호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72년 8월 19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대호지면) 송전리(松田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4월 4일 대호지면·정미면(貞美面) 천의(天宜)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 이두하(李斗夏), 남계창(南啓昌), 남상직(南相直), 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太玩)·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구장의 통지에 따라 인근에 거주하는 친형 장경환(張敬煥)과 함께 개인 연장을 지참하고 대호지면사무소로 갔다. 6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면장 이인정은 “도로 보수가 아니라 지금부터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할 것이니 참여해 달라”고 연설하였다. 예상 밖의 연설이었으나, 나라의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에 공감하여 친형 장경환과 함께 적극적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주도인물들의 지휘에 따라 선두에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다른 주민들과 함께 시위 대열을 형성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정미면의 천의장터로 행진하였다. 천의장터로 가는 동안 많은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이에 호응하며 시위대에 동참하였다. 천의장터에 도착할 즈음 만세 시위대의 규모는 이미 1,000여 명의 넘는 대규모의 시위대로 확대되었다. 이들과 함께 천의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되었으나, 대규모 만세시위의 진압을 위해 지원 나온 당진경찰서의 경찰들은 만세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다. 이로 인해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다른 주민들과 천의주재소를 습격하는 데 동참하였다. 주재소의 시설과 집기 등을 파괴한 후 해산하였다. 이날의 시위 이후 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색출을 위해 대호지면으로 파견된 일제의 홍성 헌병수비대에 체포되어 서산경찰서로 연행되었다. 4월 26일 서산경찰서의 즉결심판에서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였고,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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