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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張永希

1884. 5. 17 ~ 1960.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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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장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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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칠곡 석적면(4.9)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84년 5월 17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석적면(石積面) 중동(中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칠곡군 중동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경북 칠곡군 석적면 중동 만세운동은 이 지역에 살던 양반 장지희(張祉熙)·장영창(張永昌)·장도식(張道植)이 주도하여 이루어졌다. 이들은 일제의 한국 병합에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1919년 4월 초 주변의 성주군(星州郡)과 선산군(善山郡)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특히 4월 8일에 성주군과 선산군에서 크게 만세운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특히 4월 8일에 선산군 구미면(龜尾面) 임은동(林隱洞)에서 3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밤 늦게까지 ‘만세’를 불렀다. 이들은 이를 계기로 하여 중동 일대에도 만세운동을 펼쳐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나갔다. 이에 4월 8일, 장지희와 장영창은 장지희의 형 장철희(張哲熙)의 집에 모여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고, 그 결과 4월 9일 저녁에 석적면 중동의 뒷산에 모여 만세를 부르기로 결정하였다. 평소 장지희·장영창·장도식 등과 일가(一家)로서 뜻을 같이 하고 있던 도중 이러한 결정을 접하고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4월 9일 밤 9시가 되자, 저녁 식사를 마친 주도자 장지희, 장영창을 비롯해 중동 청년 22인이 모여 석적면 중동 동쪽 뒷산으로 올라갔다. 이들은 산 위에서 ‘독립 만세’를 수차례 반복하여 외쳤다. 이후 이를 듣고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만세 운동에 참여했던 22명 중 21명이 붙잡혔다. 붙잡힌 사람들 중에서 장지희·장영창을 비롯하여 모두 8명이 재판에 회부되어 함께 재판을 받았다. 1919년 5월 2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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