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직
張永稷1889. 12. 10 ~ 1929. 9.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칠곡군 인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0) 1889년 12월 10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 진평동(眞坪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4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시작한 만세운동은 경북 칠곡에도 전파되었다. 3월 7일 계성학교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인동교회(仁同敎會) 목사 이상백(李相栢)을 찾아와 등사판(謄寫版) 독립선언서 20장을 보여주며 만세운동을 권유한 데서 시작하였다. 이에 이상백은 임용섭(林龍燮)·이영래(李榮來)·박명언(朴明彦)·권영해(權永海)·임점석(林占錫) 등과 함께 3월 12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으며 독립선언서를 필사(筆寫)하는 등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거사일인 3월 12일 당일 이들은 필사한 독립선언서를 마을 곳곳에 붙이는 한편, 동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만세운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하였다. 같은 날 저녁 8시에 인동면 진평동의 뒷산 기슭에는 약 200명의 주민이 모였다. 이영식과 이상백의 연설에 이어 ‘독립만세’를 다함께 외쳤다. 이 소식을 접한 일제 경찰이 만세시위에 참가한 주민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주도자들을 체포하였다. 다음날인 3월 13일 오후 4시, 오후 9시, 3월 14일 오전 10시에도 약 15~40명의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모여 만세시위를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영식과 같은 계성학교 학생인 김도길(金道吉)은 같은 동네에 사는 박봉술(朴鳳述)·김성윤(金性允)과 함께 또 한 번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3월 14일 저녁에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한 집에서 한 사람씩 독립만세를 부르러 모여 주기를 청하였다. 이때 박봉술에게 권유를 받고 함께 같은 날 밤 9시에 200여 명과 함께 인동면 진평동 뒷산에 올라 다시금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었다. 만세시위가 계속되자 일제 경찰들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주도자를 비롯하여 참가한 사람을 체포하였다. 이때 체포된 박봉술의 진술 과정에서 만세시위 참가가 확인되어 붙잡혔다.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8월 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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