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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옥

張永鈺

1890. 8. 19 ~ 1952.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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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장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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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칠곡군 석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90년 8월 19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석적면(石積面) 중동(中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8일 칠곡군 석적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촉발한 만세시위는 곧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경북 칠곡군의 만세운동은 4월 초에 인근 지역인 성주군(星州郡)과 선산군(善山郡)의 만세운동을 계기로 촉발되었다. 그 중에서도 4월 8일 선산군 구미면(龜尾面) 임은동(林隱洞)에서 유지 강용준(姜龍俊)·유시동(劉時東)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계획되고 있다는 소식은 석적면 중동의 만세운동을 계획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구미면 임은동의 만세운동은 3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성공리에 진행되었다. 이에 칠곡군 석적면 중동에 살던 양반 장지희(張祉熙)·장영창(張永昌)·장도식(張道植)은 일제의 한국 병합에 불만을 품고 있던 차에, 이번 기회를 보아 자신들도 중동 일대에서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4월 8일 장지희의 형 장철희(張哲熙)의 집에 모인 장지희와 장영창은 4월 9일 저녁 석적면 중동의 뒷산에서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하고 자리를 떠났다. 다음날인 4월 9일 밤 9시 석적면 중동 동쪽의 뒷산에는 주도자인 장지희·장영창을 비롯하여 중동의 청년 22인이 모였다. 이때 장지희·장영창·장도식 등과 일가(一家)로서 평소 뜻을 함께하고 있었기에 이 자리에 참석하여 ‘독립만세’를 수차례 외쳤다. 소리를 듣고 달려 온 일제 경찰에 의해 중동 만세운동에 참가한 22명 중 21명이 현장에서 붙잡혔고, 그 중 8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때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5월 2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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