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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두백

張斗珀

1898. 10. 5 ~ 1980.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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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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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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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칠곡군 석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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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98년 10월 5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석적면(石積面) 중동(中洞)에서 태어났다. 이름을 읽기에 따라 장두박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9일 칠곡군 석적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서울에서 촉발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전파되면서, 칠곡군 석적면에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석적면 중동의 만세시위는 같은 지역의 양반인 장지희(張祉熙)·장영창(張永昌)·장도식(張道植) 등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평소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 사실에 불만을 품고 국권회복을 염원하고 있었는데, 1919년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4월 8일 인근에 위치한 성주군(星州郡) 일대와 선산군 구미면(龜尾面) 임은동(林隱洞)에서 강용준(姜龍俊)·유시동(劉時東)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크게 일어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이를 기회로 중동에서도 만세시위를 벌이고자 계획하였다. 4월 8일 장지희와 장영창은 장지희의 형 장철희(張哲熙)의 집에 모여 다음날인 4월 9일 저녁 중동 마을 뒷산에서 만세를 부르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4월 9일 밤 9시경 장지희·장영창을 포함한 마을 청년과 주민 수십여 명과 더불어 마을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홀로 산기슭에서 이들을 따라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이웃한 성곡동(城谷洞)에서도 장영조·박팔문 등이 주도해 마을사람들과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거행하면서 석적면 중동과 성곡동에서 만세시위가 폭발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일제는 만세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일제경찰을 파견해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무차별적 체포를 단행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제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2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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